
지난 주말, 친정 엄마 칠순 앨범을 만들겠다고 호기롭게 시작했습니다. 휴대폰 속 5년치 사진 17,432장, 챗GPT(ChatGPT)한테 맡기면 끝날 줄 알았거든요.
토요일 아침 9시에 노트북을 켰는데요.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챗GPT 혼자로는 절대 끝나지 않더라고요. 대신 챗GPT를 "정리 도구"가 아니라 "큐레이션 비서"로 자리를 바꿔 잡고 나서야, 일요일 저녁에 포토북 주문 버튼을 누를 수 있었습니다.
챗GPT에 사진 1,000장 통째로 못 맡기는 세 가지 벽
처음엔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17,432장에서 우선 1,000장 안팎으로 추리고, 그걸 챗GPT한테 던지면 "엄마가 좋아하실 만한 80장" 정도는 알아서 골라줄 거라고요.
근데 막상 해보니까 벽이 셋이었습니다. 일단 챗GPT Plus 유료 모델도 한 번에 받아주는 사진이 하루 50장 수준으로 알려져 있어요. 1,000장을 다 태우려면 산술적으로 최소 20일이 필요한 셈입니다. 50장이 어느 정도냐면, 휴대폰 갤러리 한 화면 스크롤 두세 번이면 끝나는 분량이에요.
두 번째는 압축 파일 우회가 안 통한다는 점이었어요. zip으로 묶어 던져도 챗GPT가 개별 사진을 열어 분석하지는 못합니다. 세 번째가 진짜 결정타였는데요, 챗GPT는 세션이 끝나면 앞 대화에서 본 얼굴을 잊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아이가 큰조카예요"라고 학습시켜도 다음 창에선 다시 "어린이"로 돌아오더라고요.
그래서 목표를 다시 잡았습니다. 포토북용 베스트 80장 선별. 1차 분류는 따로, 챗GPT한테는 마지막 큐레이션과 캡션만 시키는 쪽으로요.

1단계: 마일리오 포토스 자동 분류, 챗GPT엔 "기준"만 묻기
처음에 챗GPT한테 "1,000장 어떻게 나눌까?"가 아니라 "1,000장 분류해줘"라고 시킨 게 첫 실수였어요. 당연히 못 하죠. 그래서 질문을 바꿨습니다.
"5년치 가족 사진 1,000장을 칠순 앨범용으로 정리하려고 해요. 분류 기준 5개만 제안해줘."
이건 1분 만에 깔끔하게 나오더라고요. 연도×주요 이벤트, 인물 조합(엄마 단독·엄마+자녀·3대), 장소(집·여행·외식), 사진 품질(흐림·중복 제외), 감정 톤(웃음·차분함·일상). 이 5개 축을 받아들고, 이제 진짜 분류는 전문 도구한테 넘겼어요.
제가 쓴 건 마일리오 포토스(Mylio Photos)였어요. 오프라인에서 대용량 라이브러리까지 처리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얼굴 인식과 EXIF 기반 자동 분류가 같이 돌아갑니다. 구글 포토(Google Photos)도 후보였는데, 가족 사진을 클라우드에 다 올리는 게 마음에 걸려서 로컬 처리 쪽을 택했지요.
1,000장이 마일리오 포토스에서 280장으로 줄어드는 데 12분이 걸렸습니다. 중복·흐림·뒷모습 셀카가 그 12분 동안 사라졌어요. 이걸 사람 손으로 했으면 한나절은 족히 잡아야 할 분량인데, 직접 해보니 그 체감이 과장은 아니었어요.

2단계: 챗GPT 큐레이션과 캡션 — 진짜 쓸모 있는 자리
여기서부터가 챗GPT 차례였어요. 280장을 이벤트별 묶음(2022 가을 여행, 2023 손주 돌, 2024 봄 외식 등)으로 30~40장씩 쪼개서, 한 번에 한 묶음만 올렸습니다.
프롬프트는 이렇게 깔았어요.
"엄마 칠순 앨범에 들어갈 사진이에요. 이 중 베스트 8장을 감정 흐름(설렘→웃음→차분함) 순으로 골라주세요. 각 사진에 어울리는 두 줄 캡션도 같이 — 엄마가 읽을 거니까 짧고 따뜻하게, 이모지는 빼고요."
결과가 진짜 마음에 들었습니다. 30~40장 중 8장을 고르는 일은 사람이 하면 한 묶음당 20분씩 걸리거든요. 챗GPT는 1분 안에 골라주고, 캡션 초안까지 같이 줍니다. 7개 묶음 큐레이션과 캡션 초안 작업이 90분 만에 끝났어요.
물론 캡션은 그대로 쓰면 안 됩니다. "할머니의 환한 미소"라고 써놨는데, 사실 그 사진은 엄마가 잠깐 졸다 깬 순간이었네요. 그래도 빈 종이에서 시작하는 것과, 7~80점짜리 초안 위에서 다듬는 건 진짜 다른 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챗GPT를 "사진을 정리해주는 AI"가 아니라 "선택지를 좁혀주고 글쓰기 첫 줄을 깔아주는 AI"로 쓰는 쪽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봐요. 이게 핵심입니다.
챗GPT 사진 정리 함정 3가지 —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
1. 얼굴 인식 동일인 오판
얼굴 인식이 같은 인물을 다르게 판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잦았어요. 안경 쓴 엄마와 안 쓴 엄마를 다른 사람으로 봅니다. 1차 분류 도구 안에서 한 번씩 "같은 사람" 확인을 눌러줘야 한다는 얘기예요.
2. 맥락 오독과 부적절한 캡션
작은아버지 장례식장 사진 한 장이 묶음에 섞여 들어갔는데, 챗GPT가 "평화로운 오후의 풍경"이라고 캡션을 달았어요. 마지막에 사람이 한 장씩 못 봤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슬픈 자리와 일상 자리를 AI가 톤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EXIF 위치 정보 유출
EXIF에 GPS 좌표가 박혀 있다는 걸 깜빡하기 쉽습니다. 집에서 찍은 사진엔 집 주소 좌표가, 학교 앞 사진엔 학교 위치가 그대로 묻어가요. 챗GPT에 올릴 사진은 업로드 전에 메타데이터를 한 번 떨궈주는 쪽이 안전하다고 봅니다. 저 같은 경우엔 윈도우 탐색기에서 우클릭 → 속성 → 개인 정보 제거로 미리 일괄 처리해두고 올렸어요.

토·일 이틀 일정과 총 비용 정리
- 토요일 오전: 마일리오 포토스 설치 후 1,000장 자동 분류 (12분) + 이벤트별 묶음 정리 (50분)
- 토요일 오후: 챗GPT에 묶음별로 올려 큐레이션·캡션 초안 작업 (90분)
- 일요일 오전: AI 캡션의 고유명사·감정 톤 직접 수정, 80장 최종 확정
- 일요일 오후: 포토북 사이트(저는 스냅스를 썼어요)에 업로드 후 주문
총 비용은 약 8만 원이 들었습니다. 챗GPT Plus 한 달치 약 3만 원, 포토북 인쇄·제작비 약 5만 원이에요. 마일리오 포토스는 트라이얼로 풀 기능을 써볼 수 있어서 이번엔 결제 안 했고요. 본격적으로 계속 쓰려면 신규 가입자 기준 월 20달러(연 240달러) 정도, 기존 구독자는 연 119달러대가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챗GPT 사진 정리, 결국 사람이 골라야 하는 마지막 한 장
이틀을 굴려보고 든 생각은 단순합니다. AI는 사진을 "정리"해주지 않아요. 내가 골라야 할 사진을 "좁혀주는" 도구입니다. 1,000장이 280장으로, 280장이 80장 후보로 줄어드는 자리까지가 AI 몫이고, 그 80장 안에서 "엄마가 액자에 걸어두고 매일 보고 싶어할 한 장"을 고르는 건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전문 도구 1차 분류 + 챗GPT 큐레이션의 2단계 분담, 이 순서만 잡고 시작하시면 주말 한 번으로 충분합니다. 반대로 챗GPT 한 도구로 다 끝내려고 하시면 20일째에도 1차 분류조차 못 끝낸 본인을 보시게 될 거예요.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엄마한테서 카톡이 왔어요. "이 사진들 어디서 다 찾았어." 그 한 줄을 다시 읽는데, 토요일 새벽에 노트북 앞에서 1,000장째 썸네일을 넘기다 잠깐 멍해졌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 장면 위로 카톡 한 줄이 정확히 포개지는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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